1. 말씀묵상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나라든지 흥망성쇠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나라가 세워질 때를 생각해 보면 그 때는 새벽별 같이 빛나는 나라입니다. 인재들이 모이고 그들을 모아서 하나의 구심점을 만들어 줄 위대한 한 사람이 출현합니다. 그 사람은 공의와 정의가 넘치며 지혜가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가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되어서 새로운 나라를 창건합니다. 나라가 성장하는 과정에는 좋은 왕들이 연이어서 나타납니다.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공평하게 사랑하고 인자하게 대합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든지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하늘을 거슬러 일하지 않습니다. 나라는 성장하고 발전해 나갑니다. 백성들은 왕의 선정을 칭송합니다.
그런 세월이 오랫동안 지속되다가 어떤 계기를 맞이합니다. 그 계기는 외부적인 문제가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위정자들은 타락합니다. 백성과 하늘의 뜻보다 자신의 창고를 채우기에 급급합니다. 때마침 외부의 침입이 일어납니다. 내부적으로 결속력이 약한 나라는 침입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때부터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걸어갑니다. 쇠락의 길이 오랫동안 지속되지만 나라를 새롭게 할 인재가 보이지 않습니다. 백성들은 하늘을 향하여 하소연합니다. 나라는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없는 외부의 침입을 당하고 망하게 됩니다.
한 나라의 흥망성쇠의 과정은 대체로 이런 곡선을 거칩니다. 나라가 흥할 때는 흥하는 이유가 있고 나라가 망할 때도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교훈을 얻습니다. 나라 뿐 아니라 한 개인의 삶에도 역시 흥망성쇠의 곡선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어떤 한 사람의 삶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니느웨로 대표되는 앗수르의 패망과 멸망의 이유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앗수르를 심판하시는 이유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앗수르가 어떤 나라였습니까? 그 나라는 평범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대제국이었습니다.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세워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핵심 국가였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자연 환경을 극복한 용맹스러운 백성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국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앗시리아의 멸망을 역사가들은 다양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후대에 교훈을 남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시각이 훨씬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보시는 분이시고 우리가 놓치는 부분도 살펴보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앗시리아의 과거 영광이 이제는 쇠하여졌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10절과 11절을 보십시오. “니느웨가 공허하였고 황폐하였도다 주민이 낙담하여 그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모든 허리가 아프게 되며 모든 낯이 빛을 잃도다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앗시리아 과거의 영광이 공허하고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찬란했던 문명과 제국을 이룬 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나님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첫 번째 이유입니다. 움켜 사냥한 것과 찢은 것으로 구멍을 채웠습니다. 앗시리아는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변 나라들의 위협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힘을 가졌습니다. 엄청난 무기와 용맹스러운 군대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주변 나라들 심하게 압제했습니다. 움켜 찢고 가진 것으로 주변 나라를 괴롭게 했습니다. 힘이 있으면 힘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합니다. 절제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이 중요하고, 권력이 있으면 권력을 누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덩치가 큰 사람은 조그만 움직여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위협이 됩니다. 앗시리아는 자신들이 가진 권력과 어마어마한 군사력으로 주변 나라들을 압제하고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신 첫 번째 이유가 되었습니다.
앗시리아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힘과 권력을 가졌는데 내가 가진 것 하나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가 부와 명예, 그리고 힘을 가지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이 나를 심판하시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세와 힘을 주시고 물질을 주셨다면 왜 주셨는지를 생각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나치게 넘치는 힘과 권력을 가졌는데도 그것을 통해서 주변을 괴롭게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마음껏 사용하도록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입니다. 역시 12절 말씀입니다.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하나님께서는 앗시리아를 수사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수사자가 암사자와 새끼 사자만을 위해서 사냥했다고 책망하십니다. 자기 자식과 가족만 위하는 이기적인 앗시리아의 모습이 하나님이 그들을 심판하시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앗시리아는 자기 백성들과 자기 나라의 부귀영화만을 위해서 제국의 덩치를 불렸습니다. 앗시리아 때문에 망한 나라가 한 둘이 아닙니다. 북이스라엘이 대표적인 나라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을 엄청난 힘으로 짓밟았습니다. 대항할 수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황폐화 되었습니다. 사마리아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군대는 북이스라엘 여인들을 겁탈합니다. 사마리아 전체를 혼혈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히스기야 시절에는 남유다를 겁박했습니다. 남유다를 에워싸고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힘 있는 나라가 할 짓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제국의 권세를 누리고 그 안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다른 나라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습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힘없고 연약한 백성들을 괴롭게 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창고를 채워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에서 어리석은 부자 비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자는 가만히 있어도 부자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자신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 있는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짓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먹고 마시고 쉬자.”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잔칫상을 벌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 내가 너의 영혼을 취할 것인데 그러면 이것이 다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앗시리아가 바로 그 어리석은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자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연약하고 힘든 사람들이 가진 것을 빼앗지 마시고 그들을 돌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많이 가지는 것이 미덕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있습니다. 이런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더 많이 나누어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삶이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너의 대적이 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앗시리아의 잘못은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들은 나훔 선지자가 예언하기 약 1세기 전에 요나의 예언을 들었습니다. 그 때는 겸비했습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과 한 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리로 속히 회개하여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나훔 선지자가 예언할 때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영원한 대적이 되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어서 망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출애굽 하는 이스라엘을 막은 바로입니다. 이집트의 왕 바로는 열 가지 재앙을 고스란히 다 당합니다. 홍해가 갈라질 때 바로의 군대가 홍해에 수장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대적이 되면 이런 재앙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어리석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현장과 서 있는 자리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혹시 내가 하나님과 대적된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 있다면 즉시 돌이켜 하나님과 한 길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니느웨의 멸망을 보며 우리가 가야할 길을 깨닫고 그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자녀로 오늘 하루도 승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자기 생각만 하는 편협한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
2)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리에 서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백성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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