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사람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희로애락의 감정은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정 가운데 주의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분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는데 분노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공동체와 자신에게 중요합니다. 적절하게 분노를 사용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에도 유익이 됩니다. 하지만 분노 조절에 실패하면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할 것이고 결국은 자신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됩니다.
하나님도 역시 분노의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분노를 우리는 ‘거룩한 분노’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분노는 치우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한 분노요 그들을 세워나가고 무너진 질서를 회복하는데 꼭 필요한 분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행하시면서 여러 번 분노하셨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성전 정화 사건입니다. 주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는데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 파는 자들과 짐승 파는 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둘기 파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을 내 쫓으셨습니다. 그리고 목청을 높여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예수님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였습니다. 성전을 새롭게 하고 백성들의 믿음을 회복시키기 위한 분노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보면 니느웨 성을 향한 하나님의 분노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왜 분노하셨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고치지 않고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4절을 보시겠습니다. “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미혹하는 음행을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앗수르는 강력한 군사력과 엄청난 부를 자랑하는 나라였습니다. 일반적인 평범한 나라가 아니라 제국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발현해서 고대 근동 전체를 휩쓸어버렸습니다. 주변 나라들은 앗시리아를 배우고 닮고 싶었습니다. 그들도 부국강병한 나라가 되고 싶었습니다. 앗시리아 존재 자체가 큰 영향력이었습니다.
그런데 앗시리아는 많은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우상이 이웃 나라에 흘러 들어갔습니다. 북이스라엘도 앗시리아가 섬기는 우상을 들여와서 섬기고 있었고 남유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미혹하는 음녀처럼 이웃 나라들의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중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너희들의 삶의 형태가 이웃 나라들을 우상 숭배하게 하는도다. 미혹하는 음녀의 행실을 너희들이 지금 하고 있구나.” 하나님은 그것 때문에 분노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이들의 악행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 오로지 돈 밖에 없는 사람들은 돈의 악취를 풍기며 살고 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삶의 현장마다 돈을 자랑합니다. 자식을 자랑하는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자녀 자랑에 목이 쉴 정도입니다. 명예를 자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한시도 귀를 쉴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 속에 무엇을 모시고 사느냐에 따라서 이웃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심령 한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다면 우리가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주님을 증거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무엇이 자리 잡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 심령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 하루를 살아가면서 무엇을 드러내고 누구를 전파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앗수르가 우상을 숭배하고 증거 하는 것이 하나님의 분노의 시발점이 된 것처럼 혹시 내 마음 속에 나도 모르는 우상을 숨겨 놓고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우리 존재와 일상을 깊이 있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 민족이라 하더라도 심판하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심판 가운데 던져서 주변의 나라들에게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앗수르가 사랑했던 우상 때문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직접 보라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마음 한 가운데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고, 하나님 아닌 다른 것들을 크게 드러낸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결국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방 민족을 심판하시는 것을 보면 온 세상과 세계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훔 선지자 보다 100년 전에 요나를 보냈습니다. 북이스라엘 선지자 요나를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보내시고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온 세상 열방까지도 다스린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먼저 택하신 것이지 이스라엘 백성들만 택한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이고 하나님은 그들이 당신 앞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앗수르가 당한 심판을 보면서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친치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들을 위해서 간구하고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최선의 경주와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이방 민족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진노의 손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을 어떻게 심판하시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여러 번 기회를 주셨지만 돌이키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갈 때 결국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지금 복음을 전파해야 될 대상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돌이켜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복음을 증거 하다가 포기하고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떠올려 보십시오. 포기하지 마시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훔 선지자를 통해서 유다 백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이었을까요? 나훔 선지자는 남유다에서 예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그들은 이제 남유다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남유다의 유일한 고민은 앗수르였습니다. 앗수르만 망해버린다면 우리는 걱정거리가 없을 텐데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목청을 높여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가 그들의 간구대로 멸망당하고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랬다면 남유다는 영원히 행복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유다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앗수르의 뒤를 이어서 나타난 바벨론 때문이었습니다. 바벨론은 더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다를 위협했습니다. 결국 남유다는 바벨론의 말발굽에 짓밟히고 기원전 586년 지도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존재 때문에 나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만 없으면 나는 행복할 텐데, 이것만 주어지면 나는 행복할 텐데, 돈이 많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을 텐데, 직장에서 저 사람만 사라져 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지고 보기 싫은 것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내 인생은 다른 문제 때문에 힘들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은 누구 때문에 행복하거나 누구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다윗시절에도 여러 이방민족들이 있었습니다. 모압, 암몬,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행복했고 다윗 휘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압제하는 민족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진실한 관계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과 어떤 관계 가운데 있습니까? 이 문제를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하나님과 깊고 아름다운 교제를 누리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2) 하나님과 깊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나를 눈동자 같이 살피시는 은혜를 기억하며 말씀과 기도의 깊은 관계 안에 머물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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