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인스턴트 음식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이 빨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아주 유용합니다. 햄버거, 컵라면, 컵밥 등 여러 종류의 인스턴트 음식들이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인스턴트 음식의 치명적인 문제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주 섭취하면 결국 몸이 망가집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면서까지 시간을 절약했지만 그 시간을 생산적인 일에 사용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대개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시간을 줄였지만 그 시간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소비됩니다.
반면에 우리 전통음식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발효음식입니다.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 등 오랫동안 기다려야 제 맛을 내는 음식들이 많습니다. 전형적인 슬로우 푸드입니다.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건강에는 유익합니다. 사람들은 슬로우 푸드를 기다리면서 새로운 경험과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됩니다. 몸이 균형을 찾고 건강해지며 음식 발효 과정을 통해서 인생을 새롭게 배웁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다른 말로 하면 기다림입니다. 오래 기다려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내면이 발효되는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을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 기다림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유다 백성들의 죄악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거의 모두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 정치지도자들 모두 그들의 육체적 욕망을 위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가지고 선지자는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악한 민족 바벨론을 들어서 유다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유다가 잘못을 했다 할지라도 바벨론의 손에 우리 민족을 넘기시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변합니다. 기도하는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기다려라. 기다리면 내가 바벨론을 심판할 것이다.” 바벨론이 지금은 유다를 위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지만 때가 되면 내가 그들을 심판하리니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8절을 보십시오. “네가 여러 나라를 노략하였으므로 그 모든 민족의 남은 자가 너를 노략하리니 이는 네가 사람의 피를 흘렸음이요 또 땅과 성읍과 그 안의 모든 주민에게 강포를 행하였음이니라” 12절도 보십시오.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바벨론은 피와 불의로 그들의 성읍을 건설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할 것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이제 하박국에게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자기 민족이 심판당하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고통스럽지만 자신의 눈으로 목도해야 하며 유다를 찢어놓은 바벨론이 심판당할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책무인 것입니다.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이 있는데 바로 믿음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응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말씀이 주어졌고 하박국 선지자에게 남은 것은 기다림뿐입니다. 기다림은 바로 믿음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지, 기다림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하나님은 기한을 정해놓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알 수 없기에 답답하고, 알 수 없기에 힘들어서 하나님께 또 아룁니다. “하나님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이 답답한 시간을 벗어날 수 있습니까?” 이 마음은 선지자의 마음이기도 하고 오늘 우리의 고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의 히브리어 원뜻입니다. 믿음은 히브리어 ‘에무나’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에무나’는 곧 성실이라는 말로 옮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으니 덮어놓고 기다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성실하게 기도하며 믿음 생활을 성실하게 하면서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성실은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아주 중요한 특징입니다. 하나님이 성실하시기 때문에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운행하시고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성실 때문에 죄 가운데 살았던 우리가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성실을 요구하십니다. 성실한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매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엎드리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우리 삶에 이루어지도록 기다리는 것이 성도의 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메시아 탄생을 예고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 이후에 700여 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렸습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도 아니고 700여년 동안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려서 가장 귀한 메시아를 얻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들 하나를 얻기 위해서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두 명의 노인이 나옵니다. 한 분은 시므온 할아버지입니다. 그 분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또 한 분은 안나 할머니입니다. 이 분은 결혼한 지 7년 만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84세가 될 때 까지 매일 성실하게 기도하며 주의 도래를 간구했습니다. 두 노인이 나이가 들어서 하나님 앞에 가기 직전에 메시아를 안아보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결과에만 집중합니다. 시므온 할아버지와 안나 할머니가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아본 것만 생각하고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행복했을까 부러워합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성전에서 성실하게 엎드려 기도하고 간구했던 모습은 간과합니다. 우리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과정을 중요하게 보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은 곧 성실입니다. 믿음은 곧 기다림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기도를 하고 있으며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기다림을 통해서 하나님이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다림은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속히 주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발효되어 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다리는 자는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엎드려 기도하다가 보면 우리 속에 있는 욕망의 찌꺼기들은 가라앉습니다. 가라앉아서 사라질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찌꺼기는 걷어내고 순수함을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마치 발효식품이 오랫동안 기다리면 발효되어 몸에 좋은 음식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엎드리며 기도하다 보면 변화되어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울 믿음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어떤 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구하든지 나를 변화시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기도하면서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하겠습니다.
2) 믿음이 성실이라 하셨으니 성실하게 기도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기도하며 기다리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믿음을 가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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