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부모는 자녀를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자녀가 병이 들어 어려움을 겪으면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고치려고 애를 씁니다. 자녀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죄를 저질러 세상 사람들이 돌을 던질지라도 부모는 대신 돌을 맞는 심정으로 자녀를 껴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부모가 이러한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사람과 함께 이루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신 믿음의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죄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특별한 열심으로 그 들을 고치고 기다리며 혼내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동역자로 세워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 다윗, 수많은 믿음의 위인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길러 내셨습니다. 베드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가 얼마나 결점이 많은 사람입니까? 성질도 급합니다.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를 하실 때 그 길을 막아섰다가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까지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고난을 피해 도망갔습니다. 심지어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낙향해서 물고기 잡고 있던 베드로를 찾아가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다시 품으시고 교회의 일꾼이 되게 하셨습니다. 회복된 베드로가 성령 받은 후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특별한 열심으로 당신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고 붙잡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본받아 갈라디아 교인들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갈라디아 지역 교회에는 순박한 교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스펀지처럼 받아들였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임재 하셔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 믿음 위에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선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성품도 아주 좋았습니다.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바울이 갈라디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육체가 쇠약했습니다. 그는 육체에 가시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시 때문에 복음 전파가 힘겨웠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있는 가시가 떠나기를 세 번이나 부르짖었습니다. 세 번은 하늘에 닿을 만큼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그가 갈라디아 지역에서 목회할 때도 육체의 약함 때문에 복음 전파에 곤경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바울의 육체의 약함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용납하고 따뜻한 손길로 품어 주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사역자가 몸이 몹시 불편하면 성도들에게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의 육체의 약함을 트집 잡거나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시험에 드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따뜻하게 용납하고 품어 주었습니다. 천사와 같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처럼 바울을 섬겨주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따뜻한 성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자신들의 눈이라도 빼어 바울에게 줄 만큼 갈라디아 성도들은 바울에게 헌신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고마움을 마음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 위에 굳게 서고 성품도 좋았던 갈라디아 성도들이 유대에서 온 거짓 선지자들의 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유대에서 온 거짓 선지자들이 할례 받아야 구원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도 할례 받는 대열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에게는 고통이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하나님의 값없이 주신 은혜의 복음이 무색해진 순간이었습니다. 바울은 다시 결단하고 시작하겠다는 다짐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바울은 다시 너희를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 교회를 개척할 때 돌에 맞아 죽을 뻔 했지만 비시디아 안디옥,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교회를 개척하고 목회했습니다. 그때 이미 해산하는 수고를 마쳤습니다. 복음 안에서 은혜 가운데 그들을 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제자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룰 때까지 나는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고 결단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다시 방문할 계획을 말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바울은 1차 선교여행 이후에 이 소식을 듣고 2차, 3차 선교 여행 때 갈라디아 지역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언성을 높이는 논쟁을 해서라도 그들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다시 이룰 때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고 결단하고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바울이 왜 그렇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열심을 내어 사람을 키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특별한 열심으로 우리를 길러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결단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사람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입니다.
내 자식이라면 쉽게 포기하겠습니까? 내 몸으로 낳은 내 자식이라면 쉽게 포기하겠습니까? 몇 번 전도해 보다가 안되면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일찍 포기하셨더라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나를 여기까지 인도했음을 믿고 우리도 그 은혜에 빚지고 사는 인생이라면 우리도 바울처럼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질 때까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로워질 때까지 열심을 다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겠다는 이 결단이 오늘 우리의 결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바울처럼 해산하는 수고를 다하겠습니다.
2) 한 영혼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을 내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세우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본받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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