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물려받고 부모세대에서 하던 일을 자녀들이 물려받는 일은 3자가 보기에는 아름답고 부러운 일입니다. 가업을 계승한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특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사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에게 가업을 물려주는 것이 마음이 편할 수 있겠습니까?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 지 잘 알기에 자녀가 감당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쓰이고 애가 탑니다. 가업을 물려받은 자녀도 마찬가지로 불편합니다. 적어도 부모보다는 잘해야 된다는 강박과 부담감이 존재합니다. 부모님이 고생해서 가업을 일군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잘못하면 부모님의 수고를 한 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을까 염려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바울과 디모데도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녀가 없습니다. 그는 서신서 곳곳에서 디모데를 믿음 안에서 낳은 아들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함께 다니며 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했기 때문에 그는 영적인 아버지로 디모데에게 목회사역을 부탁했습니다. 바울이 사랑하고 혼신을 다해서 일구었던 에베소 교회를 디모데에게 부탁하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잘 알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면면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구체적으로 목회를 이렇게 하라고 말하려 했다면 얼마나 많은 말을 쏟아낼 수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바울은 자제하고 또 자제합니다. 바울은 목회의 큰 틀을 디모데에게 조심스럽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을 이렇게 대하라는 말씀이며 디모데 자신을 위해서 최소한 이것은 하라는 말씀입니다.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성도들과의 관계를 말합니다. 늙은이에게는 아버지처럼, 젊은이에게는 형제들처럼, 늙은 여자 분에게는 어머니처럼, 젊은 자매에게는 친 남매처럼 대하라고 가르칩니다.
바울이 전하는 성도와 맺는 관계의 핵심은 가족같이 대하라는 것입니다. 왜 성도를 가족같이 대해야 할까요? 왜냐하면 성도들은 모두 같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가족이 됩니다. 바울이 이렇게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것은 목회자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고 대접 받는 존재가 아닙니다. 목회자도 성도들처럼 믿음 생활을 함께 하는 존재입니다. 목회자든 성도든 누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가족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설교하고 있을 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누가 내 동생들이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대로 행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가족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목회자 디모데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만나고 교제하는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 안에서 가족입니다. 가족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식구 중에 누가 아프면 열일 제쳐놓고 그를 돌보고 섬깁니다. 물질을 들여서 고치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한 발 떨어져서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생각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습니다. 진실로 혈연의 가족이라면 마음을 다해서 간호하고 돌볼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누군가 아프면 성도들은 한 마음이 되어 그를 돌보고 섬겨야 합니다. 가족이 잘되면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습니까? 내가 잘되는 것보다 자녀가 잘 되고 가족이 잘되면 기쁘고 행복합니다. 성도들이 잘되면 우리가 모두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것이 가족의 도리입니다.
가족이 잘못된 길로 가면 매서운 회초리로 다시 돌아오도록 권하지 않습니까? 성도들 중에 누군가 이단 사상에 빠지거나 잘못된 길로 가면 합심해서 그를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워야 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성도를 가족같이 대하라는 말씀은 이런 의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공동체 장로들에 대한 지침을 줍니다. 17절과 18절을 보십시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당시 장로들은 가르치는 일과 치리하는 일 두 가지를 동시에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치리하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가 분리됩니다. 가르치는 장로는 목회자가 되고 치리하는 장로는 행정적인 장로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지침을 주기를 가르치는 장로들에 대해서는 교회가 생활을 전적으로 책임지라고 합니다.
바울은 자비량 사역을 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할 때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생활을 해결했습니다. 개척 당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가 세워졌고 에베소 교회가 든든히 서 가는 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잘 가르치는 장로들은 교회가 생활을 책임지도록 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목회자의 생활을 책임지는 것과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바울은 디모데의 영성과 육체의 건강을 챙기라고 말합니다. 22절과 23절을 보십시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목회자 디모데는 정결해야 됩니다. 자신이 정결해야 성도들의 영적 성결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육체적 질병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목회 사역에만 몰두해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위장병을 다스리기 위해서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건강이 교회 건강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이렇게 권면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 목회사역에 간섭하지 않기 위해서 자제하고 있으나 이 말씀을 읽어보면 바울이 디모데를 얼마나 아끼는지 절절히 묻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바울의 사랑을 배웁니다.
2) 정결과 성실로 주님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바울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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