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야고보가 여러 명 있었는데 그 중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사도들 중에 첫 번째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야고보서를 기록한 야고보는 예수님의 혈육이었고 요한,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일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친동생이었기 때문에 야고보의 위상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3년만 동행했지만 야고보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함께 겪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할례 논쟁이 있었을 때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그 논쟁을 정리한 일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할례문제 때문에 예루살렘 회의가 소집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돌아왔는데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특히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은 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권하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에 교회 지도자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오랫동안 격론이 이어졌는데 마지막 결론을 내린 사람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사명이고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어찌하여 그들에게 할례의 짐을 지우느냐고 반박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들이 그들의 문화를 교회에 그대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우상의 제물과 음행과 피와 목메어 죽인 것은 금하도록 하자고 하며 이 문제를 종식 지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위상이었습니다.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그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대단한 위상을 가졌지만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가 이렇게 자신을 소개한 것은 단순히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혈육인 것만 자랑하고 군림하려고 했다면 누가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 된 자의 모습을 삶으로 보여주며 실천하였기에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가 된 것입니다.
그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편지합니다. 사도 바울은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편지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개척한 교회에만 편지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에베소 교회, 빌립보 교회, 고린도 교회 등 하나의 교회에만 편지했지만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편지할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쓴 야고보서는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두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왜 이 편지를 쓰는지 소개합니다. 2절과 3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당시는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이 고난이었습니다. 야고보는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이 고난을 통해서 인내를 경험하기 때문에 고난은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내한다고 해서 무작정 참는 것이 아닙니다. 인내가 유익이 되려면 이것을 배워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인내를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길은 지혜를 배우는 것입니다. 무조건 참는 것이 아니고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배워야 인내가 참으로 유익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며 인내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견디고 참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마다 하나님께 묻습니다. 언제까지입니까? 도대체 언제 이 고난과 어려움이 끝나는 것입니까? 때로는 원망도 하고 불평도 하고 고난의 세월을 보냅니다. 하지만 인내가 유익하려면 지혜를 배워야 됩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지혜가 무엇입니까? 야고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 말씀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입니다. 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구별해 내는 것입니다. 시험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과 사람에게 받는 유혹이 있습니다. 13절과 14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여기 똑같은 단어 시험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헬라어도 ‘페이라조’라는 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페이라조는 두 가지 용법으로 사용됩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 둘째는 사람에게 받는 유혹을 의미합니다. 12절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말하고 13절과 14절은 사람에게 받는 유혹을 말합니다. 우리가 욥과 요셉처럼 시험을 받을 때도 있으나 대부분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유혹을 받습니다. 이것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이것만 분별하더라도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나가는데 큰 힘과 유익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앞에 당한 많은 시험들 가운데 어떤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어떤 것은 사람에게서부터 온 유혹인지 분별하고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서부터 온 유혹은 끊어내야 할 것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시험은 견뎌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야고보는 지혜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인내하면서 지혜를 얻어야 되는데 지혜는 말씀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시고 내린 결론과 동일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결론에서 누구든지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누구든지 이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주초를 모래 위에 놓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반대로 가르칩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야말로 바보 같은 짓이라고 가르칩니다. 말씀에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했고 섬겨 주라고 했으며 누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고 했으며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라고 했습니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도 돌려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지혜롭다고 하면 그것이 참으로 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인내의 삶을 이루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행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인내를 온전히 행하고 살아가시는 믿음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악한 세상에서 주님의 종으로 야고보처럼 살겠습니다.
2) 인내를 통해서 지혜를 배우고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의 종으로 인내를 이루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성경별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
5 | (야고보서 5장) 말세를 사는 법 | 정지훈 | 2021-08-13 | 501 |
4 | (야고보서 4장) 야고보가 주는 교훈 | 정지훈 | 2021-08-12 | 611 |
3 | (야고보서 3장) 말에 실수가 많으니 | 정지훈 | 2021-08-11 | 618 |
2 | (야고보서 2장) 믿음은 행함으로 완성됩니다 | 정지훈 | 2021-08-10 | 707 |
1 | (야고보서 1장) 예수 그리스도의 종 | 정지훈 | 2021-08-09 | 65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