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성도들 중에 내려오는 집안 전통에 따라 불교에 몸을 담고 있다가 하나님 신앙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불교에 대해서 그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허무입니다. 그 종교의 역사가 오래되고 절이 주는 고즈넉함이 마음에 쉼을 줄 수 있을까 해서 불교에 심취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허무와 불안이 생겨났다고 고백합니다. 아무도 나를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과 불안이 그들을 어렵게 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면 해탈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공덕을 열심히 쌓았지만 지금까지 쌓은 공덕으로 극락왕생할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신앙을 가져보니 나에게 공로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죄 짐을 대신 맡아 주시니 우선 해방감이 들어서 기쁘고,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형상은 없으나 말씀을 통해서 갈 길을 알려 주시고 그 길을 따라 가니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ㅊ그분들이 깨달은 진리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고 정수입니다. 그 분은 어떤 무리한 공로를 요구하지 않으시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과 위로가 우리에게 전해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미련하게도 보이는 것을 더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이는 것을 따라가려 하고 그것이 자신의 삶을 구원으로 이끌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서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어리석다고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입니다. “이제도 그들은 더욱 범죄하여 그 은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부어 만들되 자기의 정교함을 따라 우상을 만들었으며 그것은 다 은장색이 만든 것이거늘 그들은 그것에 대하여 말하기를 제사를 드리는 자는 송아지와 입을 맞출 것이라 하도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은으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우상은 다름 아닌 송아지였습니다. 원래 북이스라엘을 시작한 여로보암 1세가 만들었던 금송아지 우상도 있었습니다. 벧엘에도 있고 단에도 있었습니다. 금송아지를 모시는 신전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집안에 은으로 만든 송아지를 가지기 원했고 이런 분위기는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은으로 만든 송아지를 집에 두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바알신전에 가서 무릎 꿇는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 그런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섬기기 싫은 사람들이 은밀하게 자신의 집에 은으로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절했습니다. 가정뿐만 아니라 동네 방방곡곡에 산당을 만들고 그곳에서 은으로 만든 송아지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바알우상이나 은으로 만든 송아지 우상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형상은 있으나 말하지 않습니다. 말 못하는 우상들은 백성들에게 의무를 부가하지 않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에게 엎드리고 은송아지와 금송아지 우상에게 절하는 이유는 귀찮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이 많으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꿈에 나타나서 말씀하시고 선지자를 통해서 성가시게 하기도 합니다. 죄를 지으면 지적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성가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말하지 않고 의무를 부가하지 않는 은이나 금으로 만든 송아지 우상에게 가서 엎드렸던 것입니다.
송아지 형상에게 엎드리면 부와 명예를 얻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을 가지고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거룩한 부담감, 거룩한 멍에가 없다면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의무적으로 행하라고 주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한 말씀입니다. 말씀을 행할 수 있는 자는 구원의 감격이 충만해야 합니다. 구원의 감격이 없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은 마치 하기 싫은 숙제처럼 귀찮고 부담스럽게 여겨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은총을 주시고 말씀대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벗어나고 싶은 멍에가 아니라 거룩한 부담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행하고 있습니까? 혹시 말씀이 부담스러워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귀를 닫고 눈을 감아버리고 은으로 송아지를 만들고 자기 욕망 앞에 엎드리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 마음에 있는 은송아지 형상을 불사르고 깨뜨려야 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이 계속 말씀하십니다. 3절입니다. “이러므로 그들은 아침 구름 같으며 쉬 사라지는 이슬 같으며 타작 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 같으며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 같으리라”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가리켜 아침 구름, 쉬 사라지는 이슬, 쭉정이와 연기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상숭배 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씀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들이 섬기는 우상의 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상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확실하다고 믿었는데 한 번에 사라지는 이슬과 안개 같으며 쭉정이와 구름 같이 허무하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따라 살아갑니다. 돈보다 확실한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돈을 잔뜩 쌓아 놓으면 인생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어본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더라도 멈출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 발부둥칩니다. 바닷물을 들이키고 또 들이켜도 목마름을 채울 수 없는 것처럼 그들은 더 큰 욕망과 갈증에 시달립니다. 육체의 정욕도 마찬가지 입니다. 육체의 정욕은 채워도 끝이 없고 한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눈에 보이는 분명한 것을 잡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토록 나를 지켜줄 만큼 확실한 것입니까?
이어서 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너희들의 구원자였으며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말씀은 지금도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집트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할 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자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내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40년 광야생활을 인도해주셨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가나안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이들은 눈에 보이는 신상을 섬기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영적 지각과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 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우리와 동행 하도록 도우십니다. 오늘도 험하고 어려운 세상이지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지배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단하셨습니다. 구원자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잊어버렸는가? 하나님은 그들이 배가 불러서 교만했다고 진단하셨습니다. 물질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만 타락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배부른 것은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빌미가 되어서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 단초가 된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발적 가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자발적 가난이란 가난하고 힘든 분들을 위해서 나눔을 스스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은 분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시간을 드려서 봉사해야 합니다. 건강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열정으로 어려운 분들을 위하여 힘을 나누어야 합니다. 물질이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혼자 쓰지 말고 꼭 필요한 곳에 물질을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자리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오늘 하루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2) 자발적 나눔을 실천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오니 손 잡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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