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서로 대화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생각을 알 길이 없습니다. 서로 충분히 대화하고 말을 나누어 보아야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대화를 통해서 조정하고 풀어나갑니다. 그런데 같은 문화권에 살지 않는 사람들, 언어가 다르고 습관과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의 소통이 문제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누군가가 외국어를 배워야 합니다. 말만 배워서도 되지 않습니다. 그들의 습관과 사고방식, 문화까지 충분히 공부해야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국어를 충분히 배우고 문화를 익히고 나서 외국인과 대화할 때 소통이 되는 기쁨은 공부할 때 고통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는 어떤 방법으로 소통해야 할까요?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서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더 많이 소통하고 싶어 하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언어를 알아듣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악으로 가득 차 있고 교만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말씀하셔도 알아들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사고방식과 생각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 후에 순종을 위한 결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통로는 기도와 말씀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음에 욕심을 비워내면 하나님이 그때 당신의 언어를 들려주십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도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생각을 알려 주십니다. 그제야 하나님과 나는 소통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과 탁월한 소통을 하는 사람입니다. 16년 동안 성전 재건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백성들은 성전 재건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를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전하시는 방식이 독특합니다.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환상을 보여 주실 때마다 스가랴가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이 환상은 무슨 뜻입니까?” 선지자가 물어보면 하나님이 대답해주십니다. 하나님과 스가랴 선지자의 활발한 영적 소통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오늘 이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일까요? 사무엘이 어렸을 때 영적 지도자는 엘리 제사장이었습니다. 엘리는 영적으로 게으른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어렸을 때는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지만 사무엘에게는 예외였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잠을 청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소망했던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언어를 들려주셨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스가랴 선지자처럼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상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생각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과 대화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두 가지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1절과 2절 말씀입니다. “내가 다시 눈을 들어 본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있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십 규빗이니이다” 환상 중에 이십 규빗, 십 규빗의 큰 두루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루마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일반적으로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땅 위에 내리는 저주라 도둑질하는 자는 그 이쪽 글대로 끊어지고 맹세하는 자는 그 저쪽 글대로 끊어지리라 하니”
이십 규빗, 십 규빗의 큰 두루마리는 9m, 4.5m 정도 되는 초대형 두루마리입니다. 그런데 두루마리가 펼쳐져 날아가고 있습니다. 펼쳐있다는 것은 온 세상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날아가고 있다는 것은 심판이 곧 임할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스가랴가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는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합니다.
백성들은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을까요? 크게는 세 부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한 부류는 담담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들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해도 기쁨으로 하나님 앞에 가면 되는 사람들, 그들은 영적으로 깨어서 종말을 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두려워서 떠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못했던 사람들은 심판이 선포되면 두렵습니다. 그 두려움은 곧 회개로 변할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아직까지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무시합니다. 노아 시대, 홍수 심판의 예고를 들었지만 반응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 소돔 성이 멸망한다는 말을 듣고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각양 다른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때로는 위로의 말씀으로 때로는 심판의 말씀으로 선포됩니다. 지옥불의 강력한 심판이 선포될 때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까? 내 신앙의 영적 상태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르게 각 사람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또한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순간 영적 상태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다르게 임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의 백성들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환상입니다. 7절과 8절을 보십시오. “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니 그 때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그가 이르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귀 위에 던져 덮더라” 선지자는 한 에바 안에 여인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바는 곡식을 담는 바구니입니다. 한 에바는 약 20리터가 들어갑니다. 성인은 들어가서 앉아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여인은 빚어 만든 여신상을 의미합니다. 곡식을 담는 에바에 빚어 만든 여신의 우상이 들어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에바 안에 여신상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 곧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입니다.
사람들은 먹고 산다는 핑계 아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을 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 저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식구들을 굶기면 안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우상 숭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당화 합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문제를 여러 번 경고합니다. 인류 최초의 범죄 선악과 사건도 먹는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을 금식하셨습니다. 금식 후에 사탄이 와서 예수님을 먹는 것으로 시험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 첫 번째 인류였던 아담과 하와는 유혹에 넘어갔지만 예수님께서는 당당히 거부하셨습니다. 우리도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우상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두 가지 환상이 스가랴 선지자에게 주어졌고 선지자는 환상의 의미를 풀어서 백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백성들은 각자 자신의 믿음의 상태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선포될 때 우리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 순종하고 깨어있는 믿음의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마음에 있는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 소통하겠습니다.
2) 먹고 사는 문제로 우상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하나님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실천하는 종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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