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

(말라기 3장) 십일조 정신
2020-09-18 06:50:00
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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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묵상

공동체를 안전하고 평화롭게 유지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법입니다. 그런데 법을 적용할 때는 제정할 당시의 정신이 중요합니다. 법 제정의 정신을 따라 법이 적용되고 집행되어야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헌법 제 20조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단들이 종교의 자유를 빌미로 삼아 선량한 개인의 재산을 갈취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관해야 합니까? 이단들이 가정을 파괴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재산을 갈취하라고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명시한 것이 아닙니다. 헌법이 말하는 종교는 공동체의 안전과 질서를 해치지 않는 정상적인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법 정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느냐 지키지 않느냐에 관심이 많습니다.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율법을 제정하셨는지를 살피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오늘은 바로 그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제정하신 이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말라기 시절 백성들은 십일조를 잘 드리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십일조 드리지 않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하나님은 당신에게 드려야 할 봉헌물을 드리지 않는 당시 유다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나의 것을 도둑질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한 두 사람이 아니라 온 나라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와 봉헌물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일조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십일조가 성경에 처음 나오는 것은 창세기 14장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들을 거느리고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는 엄청난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사람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십의 일을 떼어서 드렸습니다. 멜기세덱이 먼저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자발적으로 십분의 일을 드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근본정신은 강요가 아니라 감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지켜주셨고 지금까지 안전하고 건강하게 돌보아 주심에 대한 감사가 바로 십일조의 근본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으면 토지가 소산을 낼 것인데 그 때는 십일조를 이렇게 드리라고 신명기 14장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신명기 14장에서 말씀하는 십일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일반적인 십일조입니다. 일반 십일조는 성막과 훗날 세워질 성전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성막을 짓거나 성전을 건축하는 일, 예배를 위해서 소요되는 예산에 십일조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한 가지는 구제와 봉사를 위해서 사용하는 십일조입니다. 가난한 자들, 즉 고아와 과부로 대표되는 사람들과 나그네와 객, 그리고 성전에서 전업으로 봉사하는 레위인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사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성전 제반 사무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했고 구제과 봉사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7년을 주기로 십일조는 한 바퀴를 돕니다. 첫째 해와 둘째 해에 드리는 십일조는 일반적인 십일조로 사용됩니다. 세 번째 해에 드리는 십일조는 창고에 저장됩니다. 창고에 저장되는 십일조가 바로 구제를 위해서 사용되는 것입니다. 레위인들의 생활과 성전을 찾아오는 나그네를 위해서, 성전과 주위에 있는 가난하고 병든 자,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또한 네 번째 다섯 번째 해 십일조도 일반적인 십일조입니다. 여섯 번째 해에 드리는 십일조는 구제를 위해서 사용됩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해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토지가 안식년이기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소득이 없기 때문에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합리적으로 십일조 규정을 정하셨습니다. 크게 7년을 기준으로 3년 마다 한 번씩은 나눔을 위해서, 일반해에는 성전의 제반 사무를 위해서, 7년에 한 번은 십일조를 면제하는 7년 주기 사이클로 십일조를 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일조 정신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고 십일조가 소요되는 것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율법이 정한 정신에 따라 십일조를 사용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십일조를 받아서 사용하는 교회 공동체가 과연 십일조 정신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드려진 십일조가 성전의 제반 사무를 위해서 사용되고, 성도들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는 일에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구제와 봉사를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목회자들의 생활과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나눔을 실천하는 일에 적절하게 분배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 목적대로 십일조가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면 교회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옛날 말라기 시절이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절이나 드리는 자도 이 정신을 깨닫고 드려야 하고 사용하는 교회도 십일조 정신을 제대로 알고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는 십일조를 드리라고 강요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원래 십일조 정신은 자발적 감사와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교회 공동체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없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나눔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목회자들의 생활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배와 신앙생활의 질이 갈수록 하락하고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말라기 시절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전 관리가 되지 않았고 레위인들의 삶은 피폐해졌습니다. 나눔을 실천하지 못해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말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시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우리는 이 말씀을 수도 없이 보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막연히 기대합니다. 내가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면 하나님이 내 창고를 여시고 마음껏 복을 부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를 투자하면 하나님은 열배 백배의 결실을 주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제대로 읽어야 됩니다. 11절, 12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메뚜기를 금하고 토지소산을 지켜주며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확천금이 아닙니다. 일상적인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마음을 다해서 드리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울타리를 든든히 지켜주시겠다는 일반은총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우리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 이것은 주변사람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도록 하여 우리의 명예를 지켜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십일조를 드린다고 해서 하나님이 열배 백배 천배의 복을 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일확천금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 동시에 교회는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십일조 정신에 따라 헌금하겠습니다.

2) 교회는 십일조 정신을 지키며 사용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언제나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게 하시며 가난하고 병든자를 위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은헤를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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