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동전은 한 면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동전의 양 면이 있어야 동전으로써 구실을 하게 됩니다. 사람도 왼쪽과 오른쪽의 균형을 갖추고 있어야 걷는 것이나 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새도 양쪽 두 날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자연 만물을 이렇게 균형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균형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좌우 균형은 정의와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때로는 엄한 아버지 같은 정의를 내세우고 때로는 한없이 자애로우신 어머니 같은 사랑으로 자녀들을 품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함께 나타난 자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셔서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고 동시에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인간을 심판으로 가도록 방임하시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못 박으시고 그에게 진노를 다 쏟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 죄를 향한 분노와 공의가 함께 십자가상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철저한 좌우의 균형, 정의와 사랑의 균형을 하나님이 사랑하셨던 다윗에게도 적용하셨습니다. 다윗이 죄를 짓자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지적합니다. 다윗이 죄를 깨닫고 용서를 구하자 우선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하지만 대가없이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죄 지은 대가를 요구하셨습니다. 다윗에게 죄의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하는 무서운 책임을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용서하시지만 죄의 책임은 분명히 지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향한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이루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놀라운 용서의 사랑과 정의의 채찍을 함께 받은 사람입니다.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경험한 다윗은 자녀와 나라도 그렇게 다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 압살롬의 문제에 있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셨던 사랑과 공의를 적용하지 못합니다. 압살롬이 배다른 형제 암논을 죽이고 그술 땅으로 떠난 지 삼 년이 되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을 향하여 그리워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13장 38절, 39절입니다.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기에 산 지 삼 년이라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
과거에 대한 청산, 압살롬이 형제를 죽인 죄에 대한 대가 지불 없이 압살롬을 데려오고 싶다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왕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요압은 한 가지 일을 꾸미게 됩니다. 요압은 왕을 위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왕의 마음의 흐름이 어디에서부터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요압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왕위 계승 서열 가운데 암논이 압살롬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열이 앞서 있었던 암논은 이미 죽었고 왕의 마음이 멀리 떠나 있었던 압살롬에게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요압은 알았습니다. 한 여인을 불러들입니다. 그 여인에게 있지도 않은 일을 꾸미고 여인이 왕 앞에서 할 말을 알려줍니다. 과부라고 거짓말 하게 하고 두 아들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꾸며냅니다.
여인이 왕에게 가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과부이고 두 아들이 있습니다. 두 아들이 들에 나가 싸우다가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죽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죽인 아이까지 내놓으라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살아있는 아이 마저 죽여서 우리 집에 대가 끊어질까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왕이 그 이야기를 듣자 내가 살려 줄테니 돌아가라고 합니다. 여인이 자신의 상황을 왕의 상황에 빗대어 말하고 왕의 아들 압살롬을 이제는 용서해주라고 말합니다. 왕이 듣다 보니까 요압이 이 일을 꾸몄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왕이 이르되 이 모든 일에 요압이 너와 함께 하였느냐 하니 여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내 주 왕의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옮길 자가 없으리이다 왕의 종 요압이 내게 명령하였고 그가 이 모든 말을 왕의 여종의 입에 넣어 주었사오니”
요압이 이 일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왕은 알았습니다. 그러나 왕은 모른 척 하고 요압을 부릅니다.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말합니다.
21절입니다. “왕이 요압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을 허락하였으니 가서 청년 압살롬을 데려오라 하니라”
이 일은 다윗이 잘못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압살롬이 형제를 죽인 일에 대해서 어떤 제재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형제를 죽인 일에 대해서 국법으로 그를 다스린 적도 없었습니다. 압살롬에게 벌을 주고 그 이후에 사면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압살롬을 데려오는데 급급했습니다. 철저한 징계 없이 용서만 주고자 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아버지의 이 결정은 압살롬을 괴물로 만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다윗은 압살롬을 데려왔지만 그에게 진정한 용서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24절입니다.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
데려오기는 했는데 화끈하게 용서도 하지 않았습니다. 데려온 압살롬의 얼굴을 2년 동안이나 보지 않고 지냅니다.
28절입니다.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2년 동안이나 아들을 예루살렘에 불러놓고 방치했습니다. 정의도 없고 사랑도 없었습니다. 아예 불러오지 말았어야 하는데 불러 왔습니다. 기왕에 불러 왔으면 그를 사랑해주고 완전한 용서를 했어야 되는데 그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아들을 방치했습니다. 2년 동안 압살롬은 자신의 잘못을 돌이키기 보다는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미움만 키워 갔습니다. 형제를 죽인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은 불안감이 아들의 마음속에 자라나고 있었으며 자신을 용서하지 않고 얼굴을 보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만 쌓여 갔습니다. 결국 그는 왕위를 찬탈하는 비극적인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훈련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용서에는 죄 지은 자의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께 훈련받았는데 우리 집에서 기르는 자녀들, 우리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행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면 가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다윗의 가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따라 우리 가정을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한 행복한 가정으로 일구어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도 정의와 사랑이 함께 공존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정의와 사랑의 두 날개를 가지고 살겠습니다.
2) 가정과 공동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방식대로 다스리며 섬기겠습니다.
3. 한줄기도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 어느 하나 치우침이 없이 균형을 가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모든 공동체를 다스리며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성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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