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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3장) 이제는 살리라

1. 말씀묵상

사람들은 첫 번째 것에 대해서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사랑, 첫 아이, 첫 발령지, 첫 번째 결혼기념일 등 첫 번째 것에 대한 기억은 오래도록 남는 법입니다. 어떤 가정에 자녀가 여럿 있다면 첫 아이에 대한 사랑과 기억은 남다릅니다. 둘째 아이, 셋째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첫 아이를 낳아서 기를 때는 실수도 많이 하고 시행착오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있고 그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큰 아이에 대한 미안함도 있습니다. ​첫 사랑은 열정은 있으나 서툴렀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첫 사랑은 가슴 아픈 사랑이 되어 오래 남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첫 번째 것에 대한 좋은 기억도 있으나 슬프고 아픈 기억도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는데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마치 첫 번째 교회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바울에게 데살로니가는 첫 번째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1차 선교여행을 할 때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즉 갈라디아 지역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하지만 갈라디아 지역은 핍박이 있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2차 선교여행 때 데살로니가로 건너오기 전에 빌립보를 개척했는데 빌립보 지역도 핍박이 있던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는 핍박과 환난이 크게 몰려왔습니다. 그 때문에 바울과 그의 일행은 떠나왔으나 남아있는 성도들은 핍박 때문에 흩어지지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걱정 때문에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참다못해 디모데를 그 곳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1절과 2절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생각하고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건하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디모데가 그들의 어려움을 위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낸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위하여 세움 받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바울은 ​디모데를 보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이 여러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결정하고 기도한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줍니다. 환난 자체를 없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이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게 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십자가 신앙입니다. 

​세상의 여타 사이비 신앙은 고난 자체를 없게 해달라고 자기들이 믿는 신에게 구합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에서 고난은 반드시 거쳐야 될 필수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 지고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없으면 부활의 영광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백성들에게 고난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녀들이 고난당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고난의 자리를 피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얕은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을 특별히 사랑하시면 고난의 풀무를 지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고생하지 않도록 채색 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를 고난 가운데 던지고 믿음의 연단을 잘 견디게 하셨습니다. 고난을 통과한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서 이집트뿐만 아니라 세상을 기근에서 구해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이 고난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고난을 잘 견디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고난이 거세지만 말씀을 붙잡고 고난의 현장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자들을 돌보시고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에게 고난을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은 이유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고 얼마나 가슴 졸이며 기도했을까요? 흩어지지는 않았을까? 배교하지 않았을까? 믿음을 붙들고 지내고 있을까? 디모데를 보낸 후에 바울과 실라는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자리를 옮깁니다. 디모데는 돌아와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디모데가 이렇게 기쁜 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바울은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데살로니가 전서를 기록해서 이 기쁨의 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환난 가운데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믿음을 지키고 오히려 믿음이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행복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바울은 살겠다는 말을 합니다. 어려운 고난을 잘 견디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제는 살겠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바울의 표현을 통해서 과연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시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를 십자가 공로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는 거저 구원받은 자들이니 우리도 타인의 영혼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이 고난당하는 것 때문에 가슴 아파 해야 될 것이 아니라 그 분의 믿음이 떨어지는 것 때문에 가슴 아파 해야 합니다. 그 분의 믿음이 이전과 달라지는 것 때문에 우리가 숨쉬기도 힘든 지경이 되어야 합니다. 그가 다시 믿음을 회복하고 환난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지킨다는 말을 들으면 그때 다시 살겠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믿음의 백성들은 영혼 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죽는지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땅에서 해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고 그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12절, 13절을 보십시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은 예수님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순전한 믿음을 굳게 지키고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한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잘 살고 돈 많이 벌고 출세하기를 기도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성도들이 죄 짓지 않고 거룩함에 흠이 없어서 훗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서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와 영혼사랑의 열정이 우리에게도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바울처럼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2) 그들의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임을 고백합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주님 안에서 사람을 세우고 그들이 믿음 생활 잘 하도록 돕는 사명 잘 감당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