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책별 묵상

(에스겔 40장) 새롭게 세울 성전
2020-05-07 06:50:00
정지훈
조회수   1250

1. 말씀묵상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방향이 다릅니다. 불교는 아래에서부터 위로 신을 찾아가는 종교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불교에 몸을 담고 있는 분들은 신에게 나아가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참선도 하고 도를 닦습니다. 선행을 쌓아 신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애를 씁니다. 그들은 인간이 최선을 다하면 신이 감동할 것이고 하늘이 알아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은 다릅니다. 인간이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지 않으면 모든 노력이 소용없습니다.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기대하고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져야 의미 있는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불교는 비움을 강조하고 기독교는 비움 이후에 채움을 강조합니다. 비워내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불교는 욕심과 세상 가치, 마음의 번뇌를 비워내야 행복이 임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사실 비워내는 것도 어려울 뿐더러 비워낸 빈 마음을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기독교는 비워낸 이후에 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비워낸 이후 채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1절은 본문 배경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 성이 함락된 후 열넷째 해 첫째 달 열째 날에 곧 그 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사로잡힌 지 스물다섯째 해가 되었습니다. 에스겔은 기원전 597년에 바벨론 2차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25년째, 기원전 573년쯤 되었습니다. 이제 에스겔의 나이 50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이 사로잡혀 올 때 나이가 스물다섯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에서 산지도 어언 25년이 되었습니다. 본토 예루살렘에서 25년을 살았고 포로로 25년을 살았습니다. 또한 유다가 망한 기원전 586년부터 벌써 14년 째입니다.

이 때쯤 되면 포로살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처음에 사로잡혀왔을 때는 기도도 많이 하고 애통하는 시간도 있었을 텐데 이쯤 되면 거의 포기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70년 포로기간이 끝나야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해방의 기대보다 포기하는 마음이 더 강했을 시점입니다. 이 시점에 하나님께서는 환상 중에 에스겔을 데리고 본토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것은 놀랍게도 성전이었습니다. 2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가장 높은 산은 시온 산입니다. 원래 시온 산에 하나님의 성전이 서 있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이었고 그 성전은 기원전 586년 나라가 망할 때 불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성전의 모형을 하나하나 보이시고 성전을 측량하십니다. 에스겔 40장부터 47장까지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성전의 새로운 모형입니다. 이 환상을 보는 에스겔은 깜짝 놀라기도 했을 테고 설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명처럼 여겼던 성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불타 없어져 버렸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성전을 보이시다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하나님께서 성전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4절입니다.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지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할지어다 하더라”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새로운 성전의 모형을 직접 보게 하시고 측량하게 하신 이유는 포로기가 끝나고 새롭게 세워질 성전은 이런 모양으로 만들라는 뜻이었습니다. 귀로만 들어서는 입체적으로 볼 수 없기에 보여 주셨습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의 특징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빈 성전입니다. 텅텅 비었습니다. 

에스겔 8장에 보면 성전에 우상이 가득했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넘쳐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세속적 욕망을 숭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성전이 깨끗하게 청소되고 텅 비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시고 성전을 불태우심으로써 더러운 성전을 털어내시고 비워내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정리하시고 비워내십니다. 스스로 비워내라고 말씀하셨지만 털어내지 않으면 하나님의 고난이 임합니다. 그 때 우리 마음은 가난해지고 영혼의 성전도 깨끗하게 정리됩니다. 하지만 비워낸 후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빈 성전을 보이신 이유는 이제부터 채우는 것은 너희들의 몫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의 고난을 통해서 마음이 가난해지고 비워졌다면 그 다음 무엇으로 채울지를 고민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우선 비운 후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채워 가셔야 합니다. 세속적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을 비워내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강제로 비워내실 것입니다. 강제로 비워내는 과정은 고통이 따릅니다. 고통을 감수하고 비워냈다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채우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결한 영으로 충만하게 채우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성전의 특징적인 모습입니다. 5절입니다.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방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측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길이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너비가 더한 자로 여섯 척이라 그 담을 측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높이도 한 장대며” 높이는 담의 높이를 말하고 두께는 담의 두께를 말합니다. 성전의 높이가 한 장대 즉 여섯 척, 3M 정도 됩니다. 그런데 성전의 두께도 역시 한 장대 즉 여섯 척, 3M 정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이와 두께가 같은 건축물을 우리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께가 3M 정도 되면 굉장히 두꺼운 벽입니다. 이렇게 설계한 이유는 세속적 가치가 성전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실패한 솔로몬 성전은 세상의 가치가 성전 안을 점령했습니다. 세상의 온갖 더러운 우상들이 성전 안에서 넘쳐났습니다. 그 때문에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새롭게 세워질 성전은 거룩하게 구별된 성전, 세상의 가치가 성전의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개별적 성전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세상 가치에 점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을 온전히 이루어 드리는 아름다운 성전의 모습으로 오늘 하루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더러운 세상의 악과 생각을 비워내겠습니다.

2) 비운 후에 거룩하신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빈 마음 가운데 친히 좌정하시어 선하고 바른 길을 분별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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