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말씀묵상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가시적인 세계는 물질세계, 눈에 보이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가시적인 세계입니다. 비가시적인 세계는 믿음의 백성들에게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영적인 세계는 영적 싸움이 있습니다.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세력들이 다투는 영적 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둠의 세력을 주관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그들은 당연히 사탄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탄의 정체가 무엇인지,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그들에 대항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하고 보여줍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관을 썼더라”
한 여자가 해를 옷 입었습니다. 발 아래에는 달이 있습니다. 열두 별의 관을 쓰고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이 여자가 누구입니까? 해, 달, 별은 하나님께서 넷째 날 창조하신 것들입니다. 해와 달과 별은 빛을 내는 발광체이지만 빛 자체는 아닙니다. 하나님은 첫날 빛을 창조하시고 넷째 날 해와 달과 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영광 자체는 아니나 영광을 비추는 반사체가 이 여자라는 의미입니다. 여자는 그런 의미에서는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영광 자체는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의 값으로 사신 곳입니다.
교회는 영광을 드러내고 영광을 비추는 곳이고 교회 공동체에서 믿음 생활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광된 빛을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특히 구약 교회의 위대한 공헌을 말씀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를 쓰며 부르짖더라” 여자를 교회라고 했는데 여자가 아이를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교회는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구약과 신약은 메시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구약은 오실 메시아를 바라고 있으며 신약은 오신 메시야에 대한 증언입니다.
여기서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구약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했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여자가 교회요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라면 사탄과 악의 세력이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를 가만히 둘 리가 없습니다. 3절과 4절을 보십시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계시록에서 말하는 용은 사탄을 의미합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었다 할 때 짐승은 국가권력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용의 정체를 가만히 보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입니다. 계시록에서 7이라는 숫자는 하늘의 수와 땅의 수가 더해진 완전 수 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세력인 용이 일곱이라는 숫자를 가졌다는 것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완전한 것처럼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사탄의 세력은 사람들이 볼 때는 그보다 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탄은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물질로 포장한다던지 완벽한 힘으로 포장하고 미혹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미혹되어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 사탄은 로마권력의 배후에 있었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로마 황제의 권력 배후에는 사탄의 세력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악의 세력이 여자가 낳은 아이를 삼키려고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삼키려고 하는 사탄의 세력입니다. 교회는 사탄의 세력에 핍박당하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자가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여자는 교회이고 광야는 고난입니다. 교회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있을 때 교회는 지하로 숨어들어갔습니다. 카타콤에 숨어서 박해를 피하고 그 곳에서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고난과 어려움이 주어지고 하나님 백성답게 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세상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박해합니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자녀답게 사는 데는 고난과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옛날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도 그랬고 일제 강점기와 공산정권 치하에도 그러했고 오늘 이 시대에도 세상에서 권세 잡은 악한 세력은 교묘한 방법으로 교회를 박해하고 믿음의 백성들이 믿음생활 하지 못하게 어려움을 줍니다. 우리는 비가시적인 세계에서 영전 전투가 일어나는 것을 기억하고 영의 눈을 떠서 악의 세력에 어떻게 맞서 이겨야 될지 분별해야 합니다.
계시록은 이어서 용이 어떤 세력인지 보여줍니다. 9절을 보십시오.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큰 용은 사탄인데 그 정체가 옛 뱀이라고 했습니다. 옛 뱀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를 미혹한 뱀을 말합니다. 옛 뱀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옛 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을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옛 뱀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옛 뱀은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합니다. 우리가 옛 뱀에게 미혹되지 않으려면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흐릿하게 알고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더하는데 능한 옛 뱀의 세력에 미혹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옛 뱀은 사람들에게 교만을 줍니다. 이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옛 뱀은 오늘도 우리에게 교만을 주입합니다. 내가 너보다 낫다는 교만, 우리의 목을 뻣뻣하게 만드는 교만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아지려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교만은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심각한 죄입니다. 옛 뱀은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탄은 오늘도 온 천하를 꾑니다. 여기서 온 천하를 꾄다는 말은 정도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정도는 좁은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좁은 길로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길은 고난 받는 길이고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는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길입니다.
그러나 옛 뱀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버리고 넓은 길로 가라고 미혹합니다. 옛 뱀에게 미혹되지 마시고 좁은 길,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붙잡고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계시록은 이어서 믿음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 줍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할 때 ‘거하다’는 말은 ‘스케노오’입니다. ‘스케노오’는 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한 말로 영적 임재 가운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영적 임재를 경험하며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삶, 교만이 아니라 겸손의 길을 따라가는 삶,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붙잡고 더하거나 빼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을 스케노오의 인생이라 부릅니다. 오늘 우리 인생이 옛 뱀, 사탄의 세력에 미혹되지 않고 스케노오의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실천다짐
1)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세상을 비추겠습니다.
2) 스케노오의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되겠습니다.
3. 한줄기도
사랑의 하나님, 스케노오의 인생을 살아서 좁은 길에서 하나님께 큰 영광을 올리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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